N.H 클라인바움 -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메딜 스쿤에서 저넘리즘 전공, 신문사 기자와 논설 위원을 거쳐 소설가로 활동 중

종교적 신념과 교육은 잠시 접어 두고 그 어떤 어려움도 물리치고 나는 말하겠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에 인간의 독창적인 에너지가 있다.


카르페디엠! [Carpe Diem] [Seize the day]

'오늘을 즐겨라!'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다 기억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와 닿는 말이다. 오늘 기초 통계학 '홍 한 국 교수님'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1학년들에게 보내는 선배님들의 편지'라고해서 레포트 3개를 읽어 주셨다. 그 레포트 말 중에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 냐에, 내일의 성공이 달려있다.'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일의 해가 뜬다고 오늘을 헛되이 보낼 것인가? 그럼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수도 안뜰 수도 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오늘은 즐겨라는 것이다오늘을 열심히 살아라는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과 영화는 아주 오래전에 나온 것이라고 대부분이 알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영화도 다운 받아 보았다. 물론 불법이지만 말이다.(신고는 하지 마시길) 책과 영화를 보고 왠지 나의 고등학교 때의 모습이랑 정말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는 수학능력시험 이라는 인생의 아주 큰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험이 있다. 나 또한 그 시험을 피해갈 수 없었고, 그 시험을 잘 치기위한, 오로지 점수를 위한 공부를 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을 전교생이 전원기숙사를 써야만 했던 우리도 이들처럼 엄격한 규율과 규칙, 그리고 나름의 학교가 가지고 있는 전통이 있었다. 12시에 점호를 하고 1시 까지는 취침을 해야만 했으며, 야자실에서 연장공부를 하더라도 규율이 역시나 따르는 엄격한 학교였기에 이들의 마음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고2때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런 학교의 규칙에 반대를 했던 적이 있다. 나도 그 학샐들의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겨울에 외투사건과 머리길이의 문제였던 것 같다. 학교는 '자율'을 내세우며 우리들을 다스르고 통치 했지만, '자율'이라는 녀석은 우리에게는 '억압' 이였다. 단지 '자율'이라는 가면을 쓴 '억압'말이다. 그래서 자유와 자율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자유는 말 그대로의 자유이다. 정해진 범위는 없으며 자기가 생각하는 범위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선의 크기는 자기가 정하는 것이다. 자율은 정해진 테투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선은 타인에 의해, 또는 학교에 의해 다수에게 적용되게 만들어 지는 선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나온 이들의 삶은 자율안의 자유마저 보이지 않는다. 군대의 형식처럼 딱딱하며 심지어는 개인의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 까지 막으려 하지 않는가. 언젠가 사람은 로봇과 다를 점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도 로봇처럼 대부분 고유의 번호가 다 있다. 휴대폰 번호가 될 수도 있고, 주민등록번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도 로봇처럼 이제는 조립도 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이 제어 할 수 없는 불수의근 까지 이젠 기계로 작동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의 깊이가 무궁무진하며 스스로 자가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이 무한정 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는 로봇이 있다하더라도, 사람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기회까지 빼앗아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특히 닐과 그의 아버지 페리 씨의 관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아버지는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상의도 하지 않고 벌써 닐의 미래 계획에 대해서 다 짜놓은 상태. 닐은 아버지가 정해진 길로만 걸어야 하는 불쌍한 로봇이 었던 것이다.

페리 씨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구속'이 정작 자식인 닐의 성공을 위한 것인가? 나는 이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과연 그것이 닐이 성공하는 길인가? 여기서 아버지가 생각하는 성공과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차이가 있기에?

만약 이들이 1959년이 아니라 지금의 21세기였다면, 과연 학부모들도 이렇게 까지 하는 학교를 원했을까? 아이비리그, 한국으로 치면 상위권 SKY 대학의 진학을 위해 '사고방식을 꽉 막는 오로지 점수를 위한' 최고의 명문고를 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들이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그들은 무엇을 느낄까? 오직 점수만을 위한 공부를 한 그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성이라는 것을 뒤 늦게 깨달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창의성(독창성)이 중요시 되는 시대이다. 만약 이들이 21세기의 현재였다면, 어떠했을지도 궁금하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점수를 위한 공부도 좋다. 그렇지만 키팅선장 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능동적인 사람을 만들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책을 읽다가 정말 멋진 문장이 나와서 적어 두었다.

- 종말이 온다 해도 내 삶은 충만하여라.

단지 그녀가 이 땅 위에 살아있고,

내가 그것을 알고있는 것 만으로도.


...

이 문장. 써먹어야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by BusanDavidYu 2012.07.07 22:48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