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센트미하이 - 플로우(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나다)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는 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플로우 [Flow] - 플로우란 어떤 행위에 깊에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를 일걷는 심리적 상태이다.

플로우는 즐거움 또는 행복과 같은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들은 플로우 상태를 경험하게 될 때 그 사실에 행복해 한다. 또한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플로우는 단순한 기쁨이나 열중할 때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완벽한 심리적 몰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플로우 상태는 행복한 사건들, 맛있는 음식, 자식이 부모를 향해 짓는 행복한 웃음 등에 더해지는 심리적 보너스라기보다는 오히려 오랜 기간 도안 연마해온 기술을 통해 얻게 된 노력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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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나오기 전 12월 초에 읽었던 책을.. 게을러서 이제야 부랴부랴 독후감을 써본다.

아마 누구나 플로우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보니 3시간 4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던지, 축구 시합을 하는데 전후반 45분이 마치 5분처럼 지나가버렸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플로우는 내가 책을 읽기전에 생각했던 단순한 몰입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목표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것과 나 밖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축구를 할 때 전후반 90분 동안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있지만 온전히 내 심리적 에너지를 다 쏟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공이 내 발 아래 있는 순간 나는 그 공을 어떻게 패쓰하고 슛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순간 나의 모든 주의는 공과 내 발 끝에 집중되어 있다. 그 순간 세상에는 나와 공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공에게 물리적 에너지를 주느냐에 나의 모든 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단순히 축구에 대해 내가 느낀 플로우를 이야기 하였지만 꼭 스포츠가 아니라 일상생활 어디에서든 누구든지 플로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행복은 직접적으로 찾을 때가 아니라 좋든 싫든 간에 우리 인생의 순간순간에 충분히 몰입하고 있을 때 만이 행복은 오는 거이다.


글쓴이 칙센트미하이는 앞장에서 최적경험(Otimal Experience)를 언급하였다.

최적경험이란 외적조건들에 의해 압도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 할 수 있으며, 내 운명은 내가 주인인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라고 한다.

한번씩은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멍 해질 때가 있곤 한다. 그런데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생각 해보았는데,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는 내가 무언가 집중하거나 할 일 없이, 생각 없이 있을 때였고, 내가 인생의 주인인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에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그것을 성취하려 할 때 였다.

국토대장정을 할 때나, Happy Move를 할 때에 그 순간들은 나에게 모두 플로우를 경험하게 해주었던 같다. 그 밖에도 스포츠 게임을 할 때, 시험을 치를 때,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 등등....

그러나 최적의 경험은 이러한 훌륭한 여건과 일상적인 여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시한부 인생, 평생 감옥 살이 같은 극히 일상적이지 않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플로우는 나타났다. 그 속에서도 사소한 행복들이 있었던 것이다.


-"총을 들고 있는 교도관들이 윽박지르는 큰 소리를 들으며 풀이 죽은 죄수들 대열에 서 있을 때도, 내 머리에는 시와 이미지가 물 밀듯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자유였고 행복한 사람이 었다. 어떤 죄수들은 가시 철조망을 끊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나에게는 어떤 철조망도 없었다. 나를 포함한 죄수들 모두는 고스란히 감옥안에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곳으로부터 먼 비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하이는 '우리가 어렵지만 가치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 최대 한도까지 스스로의 마음과 육체를 바쳐 자발적으로 전력투구할 때 일어난다. 따라서 최적 경험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해서 만드는 것.' 이라고 말하였다.

최대 한도까지 스스로의 마음과 육체를 바쳐 본 적이 언제였을까?

지금 내게 가장 기억나는 것은 2009년 12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엄청 큰 보름달이 머리 위에 떠있을 때가 생각이 난다.

갑작스레 나의 1년을 뒤 돌아 보았으며, 내가 1년 동안 내 인생의 진정 주인공이였다고 느꼈을 때였다. 모든 순간들이 감사했고, 내가 그동안 어떠한 선택들을 하였던 간에 그것들이 그 순간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 너무나 감사하였다.

플로우, 이러한 플로우를 느끼기 위해서 '의식통제'를 미하이는 언급하였다. 나는 TV에서, 책에서 '마음 다루기'라는 말을 많이 보았다.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려라고 많이 말한다. 바로 의식 통제가 그 마음 다스리기다.

-"사물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자각 하는가, 단지 이것이 무서울 뿐이다."

                                                                                                -에픽 테토스


나는 이러한 의식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생각하기가 아닌 그 생각을 행동함으로서 경험하고, 그를 통해서 의식을 높인가는 것. 이런 과정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사회적 목적들을 쫓기만 한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체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성취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이 이제야 들다니.. 그동안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혼자만의 착각속에서 살았을 수도..

현실적인 목표와 사회에 의해서 조건화 된 시간표에 근거하여 거기에 만족하려 삶을 살고 있진 않았는지.. 그렇게 하면 내가 하고 싶어했던 일들에 대해 무엇이 남는 것인지..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아까운 시간들 속에 내버려 두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군대니까..", "저번에는 잘 되었으니까 왠지 이번에는 안될 것 같아", "그땐 운이 좋았으니까, 이번에는 느낌이 좋지않아. 안되겠지 뭐..", "컨디션이 좋지 않네.." 등등..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 생각들을 해버린 것은 아닌지..

누구도 뭐라고 억압하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쓸모 없는 내 안의 생각들 때문에 나 자신을 가두고 그 속에서 스스로 억압되어 플로우를 느끼지 못하진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아무것도 아닌 내 생각들에 그동안 스스로를 내버려 둔건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

- 당신 자신이 플로우가 되는 것이다.

"플로우의 목적은 유토피아를 꿈꾸거나 정상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플로우 안에 있는 것이다."

정말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나 자신이 플로우가 되는 것.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플로우를 느끼는 것.

작은 것에서 커다란 감사함을 느끼는 것.

그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것.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구해 왔던 학자인 로건은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난관에 부딪혔던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객관적으로 처절한 상황을 주관적인 생각을 통해서 통제가 가능한 경험으로 전환 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었기 때문이라고 결론 지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상황이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때로는 편안함과 지루함을 일부러라고 깨트리고 나와 자신을 새로운 두려움과 고통속에 한발 담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그 속에서 플로우를 찾을 수 있다면, 무슨일을 하던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플로우 = 몰입 = 주의 = 집중 = 최적경험.... 이런 식으로 가다가 결국엔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리라 생각한다.


온 세상을 다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는 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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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sanDavidYu 2012.07.08 16:11